노태우 대통령 서거
노태우 대통령이 2021년 10월 26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6일~30일까지 국가장을 치른다고 한다. 오늘은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총정리해 보자.
대통령이 되기 전
4공화국 시절에 전두환과 함께 불법적인 군내의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하고 활동하였으며,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하여 전두환이 집권하게 하였으며 그 이후에 군인 신분을 접고 정치인으로 전향한다. 전두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6공화국이 출범된 이후에 직선제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업적 간단히 정리
1. 6월 민주 항쟁 등을 통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였다.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활동 중이던 노태우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현재의 체제인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를 헌법에 마련하였다. 실제로 본인도 군부 출신이지만 직선제를 통해서 선출되었으며 평생동안 이 점을 평생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2. 언론의 자유화
정치인에 대한 풍자 등의 자유를 허용한다고 밝히고, 미국 프리덤하우스에서 언론자유국 지위를 받는 등 언론의 자유화를 위해서 힘썼다.
3. 여야의 통합을 위한 행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당시엔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여당보다 야당의 세력이 강한 국면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야당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야당과 함께 어우르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4. 국정감사 제도 부활
5. 사회 간접 자본 건설
경부고속도로, 인천공항, 서해안고속도로, 새만금 건설사업 등을 착수하였으며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 건설도 이 시기에 시작하였다.
6. 의료보험 제도의 확대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강국이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의료비 부담이 매우 적은 수준인 나라이다. 이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확장했다.
7. 북방 관계
사실 노태우 대통령이 가장 고평가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번 노태우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뤄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소련의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 삭감 및 중단에 기여했으며 남북 기본 합의서 타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뛰어난 대북 외교 수완을 보여줬다.
8.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9. 남북한 동시 UN 가입
10. 성장과 분배가 동반된 경제 정책
사실 이 시절의 대한민국은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알아서 엄청난 성장을 하던 시기였다. 다만 그 상태에서 복지를 통한 분배에도 신경을 써 국민들 삶의 질을 올린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부정적인 평가
1. 지역감정 조장
3당 합당 과정에서 호남지방이 소외되어 지역 분란이 수면위로 다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2. 전두환
직선제에 의해 당선된 것은 맞지만 전두환의 입김이 매우 많이 들어가 사실상 전두환이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3. 선거 당시의 부정행위
부재자 투표 조작 사건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노태우와 김영삼의 대선 대결 당시에도 투표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목소리가 크다. 예를 들면 당시 군대에 있었던 군인들은 감히 야당 후보를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여러 증언을 통해 생각해 보자면 그 당시 선거가 100% 공정한 선거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4. 언론 장악
언론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 노태우이지만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하여서 1990년도에 KBS 사태가 일어났다.
그 외에도 연쇄 분신 파동 사건, 군사 정변 시도 증거 발견, 이철규 의문사 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각종 비리 등 수도 없이 많은 논란이 있었다.
마무리하는 글
사실 논란이 매우 많은 대통령이다. 그래서 이번 국장 때도 국장을 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대북 관련 행보가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지금까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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